2020년 3월 29일(일)

선우한국사 <자주 하는 질문과 답변>


입력날짜 : 2012. 04.25. 14:13

선우한국사

<자주 하는 질문과 답변>

질문
비파형동검 거푸집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적은 없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서북방에서 가져왔다는 설은 선우쌤 기본서에서 보았지만요 근본적으로 생각해서
청동기 B.C 2000~1500 년이고 철기시대는 B.C 5세기자나요
거푸집은 철로 만들어야하는데
청동기시대에 철로만든 거푸집도 없으면서 어떻게 비파형 동검을 만들었을까요?
돌로 거푸집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도
청동을 녹여서 돌형태의 거푸집에 부어서 만들면 거푸집 자체가 녹아버릴 듯 한데요;;

제 궁금점을 풀어주셔요?


선우쌤 : 역사는 끝임없이 왜? 라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저도 질문을 읽으면서----그러게 말이야. 했지요.
근데 청동기 제작용 거푸집은 활석 ·사암과 같은 불에 강한 돌을 사용하였습니다.


질문
선사시대와 역사 시대는 문자 사용의 전, 후로 나뉘지요.
우리나라는 철기 시대에 문자가 들어오긴 했으나,
청동기 시대에 이미 문자를 사용하는 곳이 있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부터 역사시대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보기에는 '선사 시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순으로 발전하였다.' 라고 나옵니다.
'청동기'는 빠져야 하는게 아닌지요.

청동기까지 선사 시대에 포함된다면,
철기에 접어들어서야 문자를 사용한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듭니다.

선우쌤 : 너무 꼼꼼하게 보셨습니다.
물론 선사와 역사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본다면 오류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선사시대를 구석기, 시석기, 청동기, 철기-이렇게 말합니다.


질문
고려는 양천제를 기본으로 하고
조선은 양천제를 확립한걸로 알고있는데요

조선은 법제적으로 양인내 차별이 없어서 양천제가 확립된거고...
고려는 법제적으로 향소부곡 차별같이..아직 법제적으로 양인내차별이 있어서 양천제 확립이라고는 하지않는다고 이해했거든요.. (맞나요?^^;;)

근데 고려가 양천제를 기본으로 운영한다는 건 어떤 측면에서 그런건가요?

선우쌤 : *^^* 너무 복잡하게 이해한 것 같습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양인과 천민이 있는것이 양천제이나, 법적으로 양천제를 확립한 나라가 조선입니다. 고려에서는 양인, 천민이라는 계급이 있어 양천제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지만 법으로는 아닙니다.

그리고 조선의 양인은 고려같은 향소부곡민은 없어도 양인안에서 국역의 의무가 다릅니다.
그러니 너무 복잡하게 이해하지 마시고 그냥 양천제가 법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조선이다.라고만 이해하세요.


질문
상인과 수공업자는 고려때도 조선때도 농민에 비해 차별이 있잖아요..
과거응시도 제한되구요..고려의 경우 국학입학도 제한되고...

근데 상인과 수공업자에 대한 과거응시제한이나 차별이..
고려와 조선 둘다 법제적인건가요? 아니면 사회적제한이고 차별인가요?


선우쌤 : 법적으로 제한을 두었습니다..

질문
고려는 지방군은 일반농민들이 부담하잖아요
이때 지배층이나 중류층도 '지방군'에 편성되나요?

선우쌤 : 이렇게 이해하세요. 일반 사병들은 농민이 주축, 그러니 이들을 지휘한 이들은 무신관료이니 당연히 지배층들이 개입하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축인 농민입니다.

질문
이조 전랑의 자천권과, 3사의 통천권은 없앤 건 알고 있는데요..
3사의 통천권이 아닌 언론 기능도 영,정조 때 폐지되었나요? (통천권과 언론기능은 다른 거 맞죠?^^;)

3사의 언론 기능은 억제되었을 뿐 폐지는 안 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친구가 폐지됐다고 하길래 궁금해서 질문 드립니다..

아 그리구요! 3사의 언론 기능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기능을 말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선우쌤 : 이것만 알아두세요.
영,정조때 3사의 기능이 약화되나 , 중요한 3사의 고유 기능은 언론기능(당연히 간쟁간은 기능)은 세도정치기에 없어집니다.


질문
발해문제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인데요
㉠무예㉡흠무
보기에서 ㉠의 재위 시기에 일본에 국서를 보냈다.라는 이 지문이 맞다고 되어있는데

일본국서를 보낸것은 문왕이 아닌가요?

선우쌤 : 이 질문을 실강에서 자주 받습니다.
하도 문왕때 고려국왕 관련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를 강조하였더니 -이런 착각들을*^^*
무왕때 일본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지요. 그러면 당연히 사신을 통해 외교문서(국서)가 오고가겠지요.


질문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나 조영수호통상조약으로 인해
외국 상인들이 내륙에서도 자유롭게 상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객주의 활동이 위축되고 몰락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점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선우쌤 : 이런 문제는 상대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만약 지문중 결정적으로 틀린것이 있다면 답은 나오겠지만,,,이럴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야지요. 외국 상인의 내륙통상이 이루어지면서 거류지무역이 깨지면서 대부분의 객주, 여각들은 몰락하나, 일부는 근대식 상화사로 성장하면서 부를 축적합니다.


질문
신량역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기본서에 보면 중세사회 천민에는 화척, 진척등이 포함된다고 적혀 있고 또한 신량역천은 천민이 아니면
서 양민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간'이나 '척'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천민이면서 척을 지닌 화척은 천민과 양민의 두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교재에서는 법제적으로는 양인 이지만 실제 지위는 천민이라서 그렇게 나와있는 것인가요?
만일 시험문제에 화척의 신분을 물어본다면 어느쪽으로 답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선우쌤 : 이 신량역천이 문제입니다. 우선 신분은 양인이고 하는 직업이 천한 이들이 신량역천으로 이들은 그 직업을 벗어나지 않는 한, 늘 천민대우를 받습니다.
자, 그러면 애정쌤이 정리해드립니다.
시험에서
1. 화척은 양인이었다(X)
2. 화척은 신량역천이다(0)
3. 화척은 천인이다.(0)
4. 그러면 2와 3이 같이 나오면요? 그런 지문은 안나오니 걱정않깁니다.ㅎㅎ


질문
신라 중대 시중에 관해서 여쭤볼 게 있습니다.
신라중대는 시중이 수상이 되어 집사부가 강화되면서 신라중대에는 화백회의가 사라지게 된 것인가요?
기본서에 보면 상대등의 세력은 약화되었다고 하는데 화백회의가 그 당시에도 존재 했다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로 전락했나요?

선우쌤 : 없어지지 않고 또 기능도 여전히 회의기구입니다.
다만 집사부의 시중 기능이 더 컸다는 거지요.


질문
권근의 동국사략은 단군 조선부터 삼국까지의 역사를 다룬 책이고 응제시주는 단군이야기를 수록한 책인데
이 둘중 단군을 기록한 역사서를 묻는 질문에는 동국사략만 해당되고 응제시주는 해당이 안되는 것인가요?

선우쌤 : 둘다 다 되지요.

질문
단군조선 역사를 기록하면서 어떻게 단군이야기를 제외하고 동국사략
에서 역사를서술한것인지 궁금하네요^^

선우쌤 : 다만, 단군이야기(즉 신화)를 기록안했다는 겁니다.

질문
1899년 최초의 사립학교가 순성여학교라고 하면 배화여학교, 정신여학교 등등

도 사립학교로써 1899년 이전에 설립되었다고 나와있는데 어느 학교가 최초의 사립학교 인 것인가요
선우쌤 : 최초의 여성사립학교가 아니라, 한국인 개인이 세운 최초의 여성사립학교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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