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일(수)

서유림 경찰 한국사 Q&A 9


입력날짜 : 2012. 03.20. 17:06

서유림

경찰한국사 Q&A





질문
요즘 최근 기출문제를 통해 정리를 해보면서 간혹 이해안되는 부분이 계속 생기네요
오늘도 두가지 질문을 좀 드릴게요
기출 원문을 함께해서 올릴게요^^;;
Q1. 다음은 1890년대의 일이다 7번째로 일어난 것은?
가. 황토현에서 관군 격파 나.청일전쟁 시작
다. 개혁기구 교정청 설치 라.삼례집회
마. 보은집회 바.명성황후 시해
사. 독립협회 창립 아.전주화약 후 집강소 설치
자. 공주우금치전투패배 차.고부민란

(1) 나. 청일전쟁 시작
(2) 바. 명성황후시해 (정답으로 표기)
(3) 아. 전주화약 후 집강소 설치
(4) 자. 우금치전투 패배

그런데, 동학의 추이대로 본다면 삼례집회-복합상소(서울)-보은집회-고부민란-황토현싸움-장성싸움-집강소-... -교정청이 설치-일본의궁궐침입(1894.6.21)-청일전쟁(1894.6.23)-1차갑오개혁(1894.6.25)- 우금치전투-2차갑오개혁(1894.11)-광주장흥전투-영동보은전투 이런 순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볼때 보기상으로는 라-마-차-가-아-다-나-자-바-사 순으로 되어 1번이 정답이 되어야 할 것같은데, 해설상으로는 2번으로 발표가 난 것으로 되어있네요...
적어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의 경우 1895.8-9월경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Q2. 다음 중 신라 하대에 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1) 신라 사회에서 선종 불교가 유행하였다
(2) 6두품 저항이 있었으나 그 세력이 미약하였다(정답으로 발표)
(3) 당이 멸망하고 송이 건국되었다
(4) 지방 호족들이 반독립적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여기서 신라 하대때라면 6두품 세력들은 당시 신라 사회에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개혁안을 제시하고 하나(최치원 등), 당시 신라 귀족층의 부패 및 잦은 왕위쟁탈전 등으로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점점 배척을 당하고 그런 와중에 반신라세력이 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와중에 중대때에 비하면 그 세력이 약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보기 지문에서 상대적으로 볼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게, 보기 (3)의 경우 당이 멸망한 시점이 907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기간은 후삼국시기가 도래하면서 통일신라가 하대의 막바지 시점이긴 하나 시기상으로 하대로 볼 수는 있겠지만, 이후 당이 멸망하고 50여년간 중국의 경우 5대10국의 혼란기를 겪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옳은 것이죠? 그리고 그런 혼란기를 수습하고 송나라가 건국되는 시점이 960년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점이라면 적어도 신라 하대는 끝나고, 우리 나라의 경우 고려 광종시기즈음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3)이 정답이거나 혹은 (2)과(3)을 복수정답으로 보는게 옳을 지 선생님의 명확한 답변을 좀 부탁드릴게요 ^^;

답변
* 문제보다는 해설이 맘에 드네요.

그런데 한가지! 신라 하대에 6두품 세력은 골품제가 강화되면서 세력이 약해집니다. 불만이었겠죠. 그런데 6두품 세력의 저항이라... 기억나는 것이 있으신가요?
6두품이 불만세력이라는 것은 아시겠지만, 그들이 실제 어떤 저항을 했을까요? 제가 아는 범위에서 6두품 세력이 주도한 반란 사건은 없네요. (관직을 내놓는 것과 같은 소극적인 저항 말고요)
그도 그럴것이 6두품 역시 귀족세력입니다. 상대적으로 골품에 눌려 있기는 하지만 체제에 순응하는 측면이 강했죠. 6두품이 새로운 개혁세력으로 대두된 데에는 호족세력의 성장에 편승한 측면이 큽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교수님.
역사서 편찬관련 공부하다가 질문을 드립니다.
네이버 지식 검색을 했는데 의견이 달라서요...

삼국유사가 편년체인지 기사본말체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삼국유사는 기사본말체입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교수님.
조선시대 법제와 관련해서 질문 드립니다.

태종 : 서얼차대법, 삼가금지법
성종 : 서얼차대법, 재가금지법

서얼차대법이 두 왕 모두 실시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태종 때는 어느 서적에서 보았구요.
성종 때는 두 법이 처음 실시되었다고 어디서 들었는데요.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두 법 모두 결국 재혼이나 삼혼을 하면 그 자손들에게 차별을 줄테니 정조를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양반집의 정처에게만 해당하는 법령이고요. 양반이 아니거나 원래부터 첩이었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 법입니다.

* 모두 태종 때 법령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성종 때라고 된 책들이 있는 이유는 뭘까요? 법령을 시행하게 된 것은 태종 때이지만, 경국대전에 실린 것은 성종 때거든요. 또한 성리학적 사회질서는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었습니다.

* 하나 더.. 재가금지와 3가금지 중 어느 것이 더 엄격한 법인가요? 재가금지죠? 성종 때 가서는 태종 때보다 여성에 더욱 엄격한 정절을 요구했습니다.

*정리해보면...서얼차대법, 삼가금지법(태종) --->서얼차대법이 경국대전에 실림. 삼가금지가 재가금지로 더욱 강화(성종)


질문
안녕하세요. 동영상 이론 단과 수강생입니다.

고대의 경제를 설명하시면서 몇몇 용어 정리를 해주셨는데요.

-[소유권에 대한] 지대 (소작인->지주): 수확량의 1/2
-[수조권에 대한] 전세 (지주-> 국가): 수확량의 1/10

그리고, 수조권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사전과 공전이 구분된다 설명하시면서

마지막으로 "국유지인 경우 1/10 이 아닌 1/4 이다" 라 말씀하시고 '지대의 개념도 1/4 이다' 라 판서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국유지'인 경우
-[소유권에 대한] 지대: 수확량의 1/4
-[수조권에 대한] 전세: 수확량의 1/4

이렇게 된다는 뜻인데 제가 궁금한 점은

1. 위의 내용이 제가 잘 이해한 것인지

2. 그러하다면, 국유지에 대한 '전세' 개념이 존재할수 있는지

3. 또한 비율이 한쪽은 경감되고 다른쪽은 가중된 것에 어떤 연유가 있는 것인지.. 입니다.
답변
사견을 말씀드리면, 아주 잘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 우선 수조권과 소유권의 개념을 구분해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조나 세를 얼마나 내는가는 중요치 않습니다.

* 수조권이란 조(組=전세=토지세)를 수취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현대에는 모든 세금을 국가가 거둬들여 이를 갖고 예산(관청 경비, 공무원 월급 등)을 집행하죠. 하지만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전근대에는 현물(곡식, 베, 가죽 등)을 직접 납부했기 때문에 부피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서 월급으로 주기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너에게 00동네의 수조권을 줄테니 그것을 월급으로 생각해라"라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조권이란 게 "토지에 대한 일체의 소유권"을 준 것이 아니라 국가 대신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라는 점입니다.
-수조권에 따른 사전과 공전 구분
(1) 사전 : 수조권을 개인이 가지고 있음. 이때 개인은 대부분 전현직 관리나 그의 가족, 군인들로서 식읍이나 녹읍, 전시과(과전, 구분전, 군인전,...)의 이름으로 받음.
(2) 공전 : 수조권을 국가가 가지고 있음. 이때 국가는 중앙 관청 또는 지방 관청이며, 이들은 (흔히) 소유권까지 갖습니다. 흔히 국유지라고 불러요.

* 소유권은 말 그대로 토지 소유에 관한 일체의 권리죠.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면 공전인데요. 내장전(왕실소유), 공해전(관청소유), 둔전(군대소유) 등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반면에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다면 사전(민전)이라고 부릅니다.


* 자 그러면 응용해볼까요? 토지 소유의 형태를 보겠습니다. (※핵심은 토지소유자 즉, 지주가 전세를 내야한다는 것입니다.)

경우 1. 땅 A가 있습니다. 소작인 B씨가 소작을 하고 있는데, 지주가 C라면 C는 사전(민전)을 갖고 있는 것이겠죠. 그런데, 관리 D씨가 이곳을 전시과(수조권지)로 삼았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조세 구조는 어떻게 될까요? 우선 소작인 B는 지주 C에게 지대(조)를 납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주 C는 수조권을 가진 D에게 조세(전세)를 내야 하죠(국가에 내는 것이 아님).

경우 2. 땅 a가 있습니다. 이 땅에는 소작인 b가 소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실제 주인이 왕실(내장전)이라면? 이때 이 땅은 국가의 소유이기 때문에 굳이 전세를 낼 필요는 없겠죠? 국가가 국가에 세금을 낼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면 소작을 하는 b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엄밀히 말해서, b는 소작료(지대=조)를 국가(왕실)에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개인소유자에게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작료를 "세금처럼" 국가에 내게 됩니다. 그래서 특별히 "지세"라고 부릅니다. 이 지세는 고려시대의 경우 1/4이었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을 보면 (경우 2)에 해당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 정리해 보면...소작농은
토지소유자가 개인인 경우 지주에게 지대를 내는 것이고요. (조라는 이름으로 생산량의 1/2)
토지소유자가 국가인 경우 국가에게 지대를 세금처럼 "지세"를 내는 것입니다. (세라는 이름으로 생산량의 1/4)


질문
쌤 질문이 생겨서 올립니다~^^

1. 도시에 나온 상인들 이야기인데 시전상인하고 난전으로 나눠지잖아여~
근데 난전에 금난전권이라고 나오는데 금난전권이 정조(1791년) 때 폐지 된 거 맞는지요???
(참고로 난전은 불법노점상 생각을~^^)

2. 사창제에 나온 이야기인데 세조 때 폐지됐다가 흥선대원군 때 부활한거 맞죠??

3. 조선시대 교육에 관한 질문이 있는데 음양학이 관상감에서 관리를 하고 법학이
형조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조금 웃긴게 왜 의학이 내의원이 아닌 전의감하고
혜민서에서 관리를 하는거죠??
답변
* 질문 1. 맞습니다...난전이란 말은 사상(私商)을 나쁘게 부르는 말이죠. 양반집권층들이 보기에 난잡해 보여서 그렇게 부른 것 같습니다(불법노점상 좋네요...). 시전상인들은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대주는 대신 금난전권이란 것을 가지고 있었죠. 즉, 시전 상인들은 그 불법 노점상을 단속할 권리를 자긴 것이었습니다. 시전상인들만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신해통공(1791) 때 정조가 채제공의 건의를 받아 없앱니다.

*질문 2. 아닙니다... ^^; 백성들을 구휼하는 주체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국가 또하나는 민간(인심좋은 부자 양반들이겠죠)...
국가가 운영하는 구휼기구는 의창(후에 진휼청)이 있었고요. 조선후기 지방 관아에서는 환곡미를 대여해줬죠.
민간이 운영하는 것은 사적으로 창고를 운영한다고 하여 "사창"이라고 부릅니다. 향촌의 부유한 양반 가문이 인심을 얻기 위해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창제는 자주 존폐를 거듭합니다. 태종 이후부터 쭉 그랬어요... 이것을 외울 필요가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환곡의 폐단(고리대로의 변질)이 결국 환곡의 폐지를 가져왔고, 그 역할을 민간(사창)이 대신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by 흥선대원군)

* 질문 3. 글쎄요...^^ 사실 이유는 저도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다만 암기에 도움을 드리고자 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의원은 왕실(왕)의 주치의들이 모인 기관입니다(검증된 의사들만 모였기 때문에 굳그 안에서 후배 의원들에 대한 교육활동이 강조되지는 않았겠죠). 반면, 혜민서는 서민 치료를 담당했는데요. 왕보다는 덜 중요한 목숨들을 다뤄서 그런지 임상실험?이 어느정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전의감은 왕실과 밀접하게 닿아 활동합니다만, 의학 교육을 주관합니다.
글세요~~ 아무래도 내의원은 왕실에 신경을 많이 쓰라고 빼준게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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